마당자리 프로젝트
공공미술 ‘시민아이디어 구현’
문화비축기지, 대한민국
전시 기획: Yun D, 박다혜, 변지원 공동 기획
SD.

공공미술 ‘시민아이디어 구현’은 시민이 상상하고 제안하는 공공미술 아이디어를 시민과 미술 작가와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과정 중심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입니다.
문화비축기지의 야외문화마당(이하 마당)을 사용하여 사회적 지형을 만드는 작업으로써 <돗자리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돗자리는 시민들의 일상을 문화비축기지의 마당 안으로 들여오는 역할로, 우리는 <돗자리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비축기지의 땅이 시민들의 일상의 풍경으로 채워지는 모습을 상상한다. “어떤 곳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치가 있다”라는 시민작가의 문장에서 출발하여, 문화비축기지에 작품을 만들기에 앞서 이곳에 이미 존재하는 가치 중 우리가 더욱 발굴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문화비축기지에 이미 존재하는 ‘시민들의 삶 그리고 향후에 만들어질 기억’들을 조명하기로 하였다. 석유전쟁의 여파로 설계된 시설이었던 이 장소가 오늘 날에는 시민들의 시간들과 삶으로 채워지길 소망한다.
특별하게 제작된 ‘돗자리’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가져가서 마당 안에서 사용할 수 있다. <돗자리 프로젝트>의 주안점은 문화비축기지와 함께하는 시민들이 돗자리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작품의 일부가 된다는 점에 있다. 돗자리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을 장소에 켜켜이 쌓아가는 행위로 인해 <돗자리 프로젝트>는 그 의미가 완성이 된다. <돗자리 프로젝트>는 시민들의 일상을 활성화시키는 사회적 관계예술로서 사람들이 장소에서 더욱 풍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자 한다.

시민들의 존재와 일상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본 프로젝트는 시민들의 일상이 존중받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확장하여 설치가 가능하다. 지역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돗자리를 통해 [문화비축기지x시민x예술가]의 관계가 또 새로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시대를 초월한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서머싯 몸이 언급했던 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가 4년에 걸쳐 500여 명을 등장시키면서 방대한 서사를 애정 어린 필치로 낸 필생의 역작이다. 전쟁과 평화는 1956년에 영화화되었는데,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당신은 마치 이 집 같군요. 고통받고 다쳤지만, 꿋꿋하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게 말이죠.”
우리나라의 석유 비축은 두 종류의 전쟁이 원인이었다. 하나는 당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물리적 전쟁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에 따라 원유 가격을 11달러라는, 직전의 거의 4배에 가까운 인상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된 경제적 전쟁이었다. 해외 의존적 경제구조를 갖고 있었던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무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지어진 것이 마포 석유비축기지였다. 1급 보안시설이라 일반 시민의 접근은 통제됐고, 간첩 대비 훈련까지 했으며, 근무하는 직원들은 긴장에 떨었다. 대량의 석유란 폭탄과 거의 동어다. 이를 잘못 관리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인명 피해는 물론 시민들의 삶에 큰 부하가 걸릴 것이 자명했으니, 이곳 직원들은 소리 없는 전쟁을 치러낸 셈이다.
하지만 세월은 잔인하다. 주요 보급 시설이었던 이곳은 시대가 바뀌면서 잊혔다. 운영 당시 그리 엄중하게 보안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12월 폐쇄 이후 사실상 10년 넘게 방치되었다. 다행히도 이곳의 가능성에 주목한 서울시가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석유 비축 탱크의 독특한 공간을 최대한 살리고 친환경적으로 복원한 공간을 마련, 2017년에 시민들 품에 돌려줬다.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이모부는 47년생으로 환경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다. 나는 그때 10살이 갓 넘었었는데, 이모부는 어린 나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시고자 노력했다.
그날 그곳에 데려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의 친구 중 하나는 중간 규모의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었다. 커다란 집게 트럭이 한가운데 놓여 있었고,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재질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온갖 물건들이 한데 쌓여있는 장면은 장관이 었다. 그런데 이모부가 날 거기 데려간 것은 단순히 고물상을 구경시켜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고물상의 뒤편에는 작은 마당이 있었는데, 여기에 그 이상한 물체들이 있었다. 두 개 정도는 완전히 다 만든 것 같았고, 하나는 만드는 중인 것 같았는데, 지나치게 다양한 색감의 철골이나 부품들을 통일성 없게 사용한 모양새가, 영락없이 이곳에 들어온 폐품들을 활용한 것 같았다. 이모부는 그 앞에 나를 데려다 놓은 다음, “이거 봐, 신기하지?”라면서 머리를 조금 쓰다듬어 주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집게 트럭의 요란한 소음이 멈추고 이모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그는 크게 대답한 다음 나를 거기 놔두고 자리를 잠시 떴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물체들과 단둘이 놓이게 되었다.
하나는 나무 위에 새가 올라간 것이었다. 나무는 철사나 폐부품으로 골격을 잡은 다음 그 위에 페인트로 색을 입힌 것으로 보였고, 그 위에 있는 새는 배 부분이 하얀 게 까치를 연상시켰다. 지금 그 작품을 다시 본다면 아마 그렇게까지 크게 느껴지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내 키는 100cm를 겨우 넘겼기 때문에, 그 작품이 거인처럼 크게 느껴졌다.
또 하나는 오토바이, 다른 하나인 만드는 중인 작품은 아마 사람이나 로봇 둘 중 하나를 구상한 것 같았다.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저 두 다리가 버티고 있는 뼈대로 봤을 때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전시회를 간다던가 하던 시절도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무언가를 그렇게 코앞에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고물상의 주인은 지금으로 치면 ‘정크 아트’를 하던 사람이었다. 기후변화, 환경오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예술가들로 이루어진 에코아트 프로젝트(EcoArt Project)가 200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고, 체코의 조각가 베로니카 리히터바(Veronika Richterva)가 페트병을 이용하여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였던 게 2004년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름도 모르는 ‘고물상을 운영하는 이모부
친구’는 시대를 꽤 앞서 나간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모든 정크 아트가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어려서 비교적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작품들은 규모가 컸다. 그는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었고, 재료가 폐부품이었기 때문에 거대한 작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폐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작품 실패로 해체할 때 나오는 대량의 쓰레기를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 이후로도 종종 작품 전시회를 가는 일이 있었지만, 본업이 예술 쪽도 아니고 살기도 바빠서 그리 자주 그런 곳에 들르지는 못했었다. 그러다가 가게 됐던 곳이 문화 비축기지였다.
처음에는 별 기대가 없었다. 원래는 친구와 함께 약속이 있었지만, 오는 도중에 개인 사정으로 약속 취소를 당했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버릴까 했지만, 도착까지 다섯 정류장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대로 돌아가는 건 어쩐지 아쉬웠기 때문에 그냥 내친김에 가 보기로 결정했다. 문화 비축기지는 지하철 6호선 월드컵 경기장역 2번 출구에서 별로 멀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들어가게 된 것이 T4였다. 버려진 파르테논신전 같은 느낌이었고, 사실 공사 중인가 하는 호기심이 날 그곳으로 이끈 가장 큰 동인이었다. 옹벽과 탱크 사이 공간 등 기존 탱크 내부를 그대로 유지한 공간이라 그렇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됐다.
들어가자마자 울림이 보통이 아니었다. 불과 몇십 년까지만 해도 원유를 그대로 머금고 있던 공간이 이제는 텅 비어있다는 것도 그랬고, 층고만 15m에 달하기에 소리의 전달력이 강력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영국 테이트모던도 발전소를 개조한 덕에 인기가 좋다던데, 이곳 역시 그런 명소가 될 잠재력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소재였다. 귀가 멍멍할 정도의 울림을 가진 높이가 엄청난 오일탱크 공간에 들어간 순간, 나는 어쩐지 예전에 이모부와 찾아갔던 고물상의 아티스트와 그가 만들었던 거대한 재활용 작품의 냄새가 떠올랐다. 쇠 냄새가 녹아있는 듯한, 어딘가 단정치 못한 듯한,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는듯한 인상의 공간을 다시 한번 만나는 것 같아서, 조금 뭉클해졌다.
새로 건물을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본래 있었던 것을 청소하고 재가공해서 운영하는 것은 배의 힘이 들게 마련이다. 문화 비축기지 준공 당시 기존의 설계도가 필요했는데 없어서 꽤나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설계를 변경하고, 낙반도 발생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얻은 철골과 돌을 가감 없이 활용했다는 것을 기사에서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물론 문화 비축기지가 앞으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발전할 것이라 생각한다. 특화된 콘텐츠를 활용해 축제와 공연의 장이 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전에 이 말은 해야겠다. 어떤 곳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치가 있다.